인생사 어렵다! 쓰기는 더 어렵다!

인생 이야기를 함께 쓰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는 항상 마음이 아렸다. 가슴 한 구석이 찌르르하는 느낌이 자주 들어서 힘들었다. 자기 이야기를 쓰려면 내 마음 안쪽에 감춰둔 우울감이나 오래 묻어둔 슬픔까지 들추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몇가지씩 가지고 있는 어두운 기억을 끄집어내려면 고통이 동반된다. 나도 그 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함께 아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 글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과거를 회상하고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지나간 자기 삶과 그 감정을 다른 이들 앞에서 토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껏 기억의 보자기를 풀고 감정을 풀어헤치고 나면 그 순간에는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지만, 돌아서고 나면 문득 부끄러워질 수 있다.

그날밤 집으로 돌아가 괜히 남들 앞에서 내 속 얘기를 꺼내고 눈물까지 보였다며 자괴감이 든다. 심한 경우에는 중도에 프로그램에서 빠지기도 한다. 상처가 너무 많아 덮고 사는 게 편했는데 그걸 다시 꺼내려니 힘들고 싫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고통스런 순간을 극복하고 ‘나를 안아주는 글쓰기’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지난했던 내 인생을 바라보는 글쓰기는 왠지 허기진 것 같은 공허한 마음을 달래주는 최고의 비법이다. 나이 들어 인생을 회고하는 글쓰기를 하는 것이야말로 긍정적으로 자신을 정리하는 길이다.

임순철은 그의 논문 〈노년세대 미디어로서의 자서전에 대한 연구 : 자서전 쓰기를 통한 정체성 형성을 중심으로〉(광운대 박사학위논문, 2015)를 통해 “자서전 쓰기는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감추어져 있던 삶의 기억을 글을 통해 드러내는 행위이며, 이 과정에서 괴로움을 덜 수 있고 타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 또한 글을 쓰는 자기가 과거의 자기를 불러내는 내적 소통으로서 자기를 재구성하는 방법”이라고 정의했다. 자기의 삶을 쓰는 것이야말로 효율적인 자기 인식 방법이며 자기의 인생과 화해하고 앞으로 살아갈 힘을 찾는 치유의 시간인 것이다.

내 인생의 기록은 시대의 기록

인생 글쓰기는 다만 내 인생의 기록에만 머물지 않는다. 개인의 기록은 가족의 기록이며 가문의 기록이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지역과 사회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역사의 한 가운데에서 개개인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은 인생 글쓰기에서 매우 필수적인 항목이다. 또 개인의 일생을 추리하고 추적하는 과정에서 묻혀졌던 역사가 드러나기도 한다.

10여 년 전 춘천 동면 월곡리의 마을이야기 책을 쓰던 중 이곳이 순흥 안씨 집성촌이며 우리나라로 유학을 들여온 안향 선생의 영정을 모셨던 영당이 있었다는 소문을 듣게 됐다. 그러나 순흥 안씨가 언제 어떻게 월곡리에 입성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다.

이곳에 사는 안 씨들이 가지고 있는 자료와 여러 문헌을 비교한 끝에 조선시대 중종 때 기묘사화에 이은 신사무옥으로 순흥 안씨들이 몰살을 당하자 일부가 춘천 동면으로 숨어들어 지내리·월곡리·감정리·상걸리 등에 순흥 안씨 집성촌을 이루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안향 선생의 영정 관련한 비사도 정리가 되었다.

개인의 삶과 사회의 역사는 무관하지 않으며 톱니처럼 연결되어 있기에 그 연결점을 찾아내어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본인은 그동안 스쳐간 인생의 어느 한 순간이 별것도 아닌 일일지 몰라도 그것이 모여 어떤 시대의 연결지점에서 만난다면 그것은 역사의 수레 속 한 점이 된다.

그래서 내 인생의 갈래갈래를 살피는 인생 글쓰기를 할 때 제일 먼저 내 인생의 연대표부터 그리고 시작하는 게 좋다. 연대표를 그리다 보면 내 인생의 주요 지점이 눈에 들어온다. 그 지점에 따라 짧게 먼저 정리하고 그 지점별로 세부 기억을 따라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책 한 권이 완성된다.

가려뒀던 인생의 거울을 열어주는 연대표

순서는 아래 표와 같다. 년도를 쓰고 그 시기의 사회 역사적 상황과 함께 가족이나 친지의 상황까지 함께 기록한다. 그래야 내 인생의 먼 옛날 그 시점의 상황과 감정이 더 오롯하게 기억난다. 그리고 나의 주요 상황과 그때의 감정도 하나둘 복기된다. 마치 가려두었던 거울을 열어젖히고 내 모습을 찬찬히 뜯어보며 나란 존재를 발견하는 시간과 같다.

연대표를 시작하는 첫줄은 나의 탄생일일 수도 있지만, 그 이전에 조부모·부모의 탄생과 만남, 결혼에 대해 시작한다면 금상첨화다. 나라는 존재는 결코 혼자 이루어지지 않았다. 부모의 만남으로 탄생했고, 부모의 성장 환경, 성격과 성향, 재력과 직업 등이 내 존재의 특성을 결정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따라서 그와 관련한 것도 꼭 기록하는 것이 좋다.

아래와 같이 주요 역사적 상황, 우리 가족의 상황, 나의 사건 사고 등을 순차적으로 기록하다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과거의 기억이 일어선다. 그 기억의 줄을 하나씩 당기며 감정과 그 사건의 의미를 써내려가다 보면 드디어 내 인생의 줄글이 버젖이 탄생하는 것이다.

물론 한 자리에 앉아서 내 인생의 연대표를 뚝딱 그려낼 수는 없다. 짧지 않은 인생이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억도 적지 않고,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은 숲처럼 울창할 것이다. 며칠을 찬찬히 앉아서 써보자. 인생 정리의 출발선에서 명료하게 나를 되돌아보자.

인생을 회고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가족과 친지에 대한 끈끈한 감정이 되살아난다. 소중했던 나만의 잊을 수 없었던 순간들, 깊게 사랑했던 마음이 민들레 꽃 피어나듯이 꽃 봉우리를 맺고, 그리고 봉우리를 활짝 열어젖힌다. 인생이라는 글을 통해 우리는 슬픔과 환희와 같은 다양한 감정을 만난다. 이 것은 치유라는 효과로 이어진다.

김효화(기록작가/글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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