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것은 나와 화해하는 길

마음이 어수선할 때가 있다. 이유도 모르게 답답하거나 불안하기도 하고, 쓸쓸함이 마음을 잠식할 때도 있다. 오로지 나 혼자만 깊은 수렁에 갇힌 것 같기도 하다. 더는 헤어나올 수 없을 것 같고, 회색빛 우울이 가득한 구덩이에서 못 빠져나갈 것 같은 두려움, 퀴퀴한 냄새나는 물에 흠뻑 젖은 것 같은 구차함, 자기의 살을 찌르는 것 같은 자괴감…. 그런 느낌에 빠질 때는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말할 수 없이 외롭다.

그런 부정적 감정이 올라올 때 우리는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기도 하고, 술 한잔에 몸을 맡긴 채 허세를 부려보기도 한다. 운동을 하면서 어지러운 마음을 꼭꼭 접어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얼마 전엔 심리상담센터를 방문했다. 인문학적 도구를 활용한 심리 치료기법에 대헤 10여 년을 공부했지만 심리상담센터를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다. 심리상담에 대한 거리감이 없어서인지 다소 걱정했던 것과 달리 말이 술술 풀려 나왔다. 상담자가 이끄는 대로 보고 말하다 보니 속이 후련해졌다.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거추장스러움없이 내 이야기를 줄줄 해버린 건 처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종국엔 내가 규정한 것들이 지나친 왜곡이나 편견일 수 있다는 통찰도 올라왔다. 상담을 마치고 돌아와서 글로 정리를 하니 나와 화해하는 길에 한 발 더 다가서는 것 같았다.

말하기와 글쓰기는 자기의 고민과 고통을 해소하는 데 가장 유용한 수단 중 하나다. 말하기는 상대가 있어야 하는 반면에 글쓰기는 혼자서도 가능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의 내면과 대화하는 것이다. 홀로 기억을 반추하며 마음을 탐색하다 보면 스스로 내게 얽매인 족쇄 같은 편견을 풀거나 슬픔과 고통의 원인을 헤집어 들여다 보기도 한다. 이것이 글쓰기의 장점이다.

인생글쓰기, 역사의 기록이자 치유의 과정

글쓰기는 자기를 명료하게 들여다보게 한다. 글을 쓰면서 우리는 성찰과 통찰의 과정을 거친다. 언어화된 자기의 생각과 마음을 객관화해 바라보면서 고통, 혹은 문제의 원인을 추적해나간다. 이것은 정제의 과정이다. 마치 흙을 떠 체로 쳐서 고운 모래만 남기듯이 내 마음의 굵직하고 지저분한 고통의 덩어리를 골라내고 진실의 자아를 발견하는 시간인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글쓰기를 통한 자기치유〉(원광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8)에서 문충호는 “온라인 카페에서 자발적으로 일기를 써온 네티즌들이 지속적인 글쓰기를 하면서 상처에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직면, 아픔이 녹아내리는 감정 정화, 상처와 자신을 떨어뜨려 객관화하는 거리두기, 상처를 새롭게 해석하는 인지적 이해과정을 거쳐 치유가 이루어진다”고 분석했다.

글쓰기를 통해 마음 치유가 가능하고 우울감이 낮아졌으며 자기의 괴로움을 덜어냈다는 것은 이미 다수의 실험과 논문을 통해 입증됐다. 글을 쓰면서 우리는 오늘 이 순간의 복잡하고 부산스러운 마음을, 마른 빨래 개듯이 차곡차곡 개켜 마음의 평온한 창고에 넣어둘 수 있다.

‘FACT·FEEL·FIND’ 3F가 고루 드러나는 글쓰기

자기 삶에 대한 글을 쓰거나 자서전을 쓰는 것은 역사의 기록이자 회고와 반성의 과정이다. 이는 흠집 나고 상처받은 인생에 대한 위로와 치유로 귀결된다.

내 인생을 쓰기 위해 세 가지 F(FACT·FEEL·FIND)에 집중할 것을 권한다. 첫째, 사실(FACT)에 기반해야 한다. 내가 겪은 사실과 경험에 기초해 진실만을 솔직하게 써야 읽고 싶은 글이 탄생한다. 본인이 주장하는 가치나 강조하고자 하는 교훈이 있다면, 그러한 가치나 교훈을 발견했거나 중요시하게 된 계기와 그것을 통해 얻은 깨달음의 과정과 통찰의 경험을 기반으로 쓰는 것이 좋다. 글에 나의 경험이 살아있지 않다면, 아무리 듣기 좋은 소리라며 백번을 강조해도 진솔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사실과 경험에 기초해 글을 쓰는 것은 자기에게도 굉장히 큰 도움이 된다. A라는 가치를 명제로 삼아 글을 쓰려고 할 때 내 인생에서 그와 연관된 사실과 경험을 찾아내려 한다면 회고와 통찰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두 번째, 글에는 감정(FEEL)을 실어야 한다. 내 마음이 드러나는 감정을 글에 싣지 않는다면 마른 장작처럼 무미건조한 글이 된다. 우리가 내 삶을 쓰는 데 가장 중요한 목적이자 결과 중 하나는 치유다. 그 누구도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상처란 이름은 감정을 동반한다. 기쁘고 행복했던 순간, 아프고 슬프고 쓰라렸던 기억 속에 담긴 감정을 끌어내어 글에 담으면서 우리는 나, 그리고 세계와의 화해를 시도하게 된다.

세 번째, 이 글을 통해 내가 얻을 발견물(FIND)은 무엇일지에 주목하자. 다시 말해 글을 씀으로써 나는 어떤 가치를 창조하고, 나와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고려하고 써야 한다. 문장 하나하나를 쓰면서 그 문장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셈하면서 써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군더더기 없는 글이 될 뿐더러 가치와 의미가 있어 맛 좋고 품질 좋고 알멩이 있는 작품이 만들어진다.

‘FACT·FEEL· FIND’, 세 가지 F를 어느 하나에 치우침 없이 고르게 담아 내 인생을 써보자. 사실과 경험에 기반하고 그 때 느꼈던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하며, 그래서 그 경험이 나의 세계에 미친 영향과 가치는 무엇인지 따져가며 인생 글쓰기를 한다면 솔직함이 따뜻하게 흐르는 좋은 글이 태어날 것이다.

김효화(기록작가/글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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