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사치가 아니라 삶 그 자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이 문장은 특히 '지역 예술'을 논할 때마다 새로운 울림으로 다가온다. 춘천이라는 도시를 보면서 더욱 그렇다. 한때 춘천은 ‘예술의 도시’라는 별칭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문화예술의 다양한 시도들이 꽃피었던 곳이었다. 마임축제와 인형극제,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던 크고 작은 공연들까지.
시민들은 주말이면 자연스럽게 문화 공간을 찾았고, 아이들은 거리의 마임 공연을 보며 웃음꽃을 피웠다. 무대는 시민의 일상 가까이에 있었고, 예술은 우리 삶과 자연스럽게 마주하고 있었다. 시민들에게 예술은 특별한 날에만 접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축제는 있지만, 예술은 없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지역 예술이 점점 '행사성'에 갇히고 있다는 아쉬움이 든다. '축제는 있지만, 예술은 없는 도시'라는 표현이 다소 과장일지 모르지만, 그리 멀지 않은 현실이기도 하다.
예술이 더이상 '필요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고 예산의 후순위로 밀리는 모습들을 보면, 이 도시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씁쓸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예술은 단지 전시회나 공연 무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도시의 표정이자 공동체의 기억
예술은 도시의 표정이자 사람들의 감수성, 그리고 지역 공동체의 기억을 담아내는 방식이다. 로컬 예술이 살아있는 도시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도시다. 누구나 표현할 수 있고 해석할 수 있으며,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의 예술은 곧 지역의 자존감이다. 외부로부터 빌려온 콘텐츠가 아닌, 우리 안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와 감정은 오롯이 우리의 것이며, 그것이 바로 지역 정체성을 형성한다. 예술은 질문을 던지고, 기억을 보존하며, 때론 변화의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이야기가 사라지는 도시의 위험
‘지방소멸’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은 요즘, '사람이 떠나는 도시'는 결국 '이야기가 사라지는 도시'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맥을 이어주는 것이 바로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규모의 국제적인 축제가 아닐 수도 있다. 동네 골목에서 버스킹을 하는 청년, 작은 전시회를 여는 중년 작가, 아이들과 벽화를 그리는 주민의 움직임 속에 이미 지역 예술의 가능성은 숨 쉬고 있다.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주는 언어
지역의 예술은 사람과 삶을 연결하는 언어다. 그리고 그 언어는 우리가 이 도시를 왜 사랑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가장 솔직한 방식이다. 예술이 단순한 장식이나 여가가 아닌, 지역 공동체의 생명력 그 자체임을 인식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예술 도시'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춘천이 다시 한번 예술과 삶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도시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김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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