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걷기 코스들은 단순한 산책로를 넘어 지역의 기억과 주민의 삶을 잇는 통로로 자리 잡고 있다. 바쁘고 빠른 일상 속에서 걷기는 속도를 늦추게 하고 공간과 시간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의암호 순환길, 28km의 사색
춘천의 대표 걷기 코스로 꼽히는 의암호 순환길은 전체 길이 약 28km로, 고도 차이가 40m 안팎에 불과해 완만하다. 춘천시 관광과 안내에 따르면 평균 3~4시간이면 완주할 수 있다.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이 길을 찾는 시민 박지현(45) 씨는 “처음엔 28km를 다 걷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절반인 14km를 별 부담없이 걸을 만큼 익숙해졌다”며 “걷는 동안 머리가 맑아지고 일주일을 정리하는 시간이 된다”고 말했다.
소양강 위에 세워진 소양강 스카이워크는 총 길이 174m, 그중 156m가 투명 강화유리 바닥으로 돼 있어 발아래 강물을 내려다볼 수 있다. 춘천시 관광과는 “높이 약 30m 지점에서 강물을 직접 내려다보는 경험이 단순한 산책을 짜릿한 체험으로 바꿔준다”고 설명한다. 서울에서 온 방문객 김승환(32) 씨는 “강물이 훤히 보이는 게 무섭기도 하지만, 일상에서 접하기 어려운 자극이라 특별했다”고 말했다.
춘천은 수도권에서 접근성이 뛰어나다. 동서울종합버스터미널에서 춘천시외버스터미널까지 소요시간은 약 1시간 10~20분, 요금은 8천600원이다. 버스터미널 예매 시스템에 따르면 이 정도 거리와 비용이면 주말 당일치기 여행으로 충분하다.
춘천시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춘천을 찾은 관광객은 883만5천670명으로, 지난해 753만851명 대비 130만 명 이상 늘었다. 이 중 서울·경기 지역 거주자가 약 35%를 차지하며, 의암호와 남이섬 같은 걷기 코스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레길 이용객 매년 10% 이상 증가
남이섬은 연간 약 300만 명이 방문하는 국내 대표 관광지다. 이들이 반드시 걷게 되는 명소가 바로 메타세쿼이아 길이다. 총 길이 1.2km로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충분하다. 남이섬 관계자는 “특히 이른 아침이나 오후 4시 이후에는 인파가 줄어 조용히 산책할 수 있다”며 “이 시간대를 노려 재방문하는 관광객이 많다”고 말했다.
의암댐 인근 삼악산 자락길은 초보자도 걷기 좋은 코스로 알려져 있다. 약 1시간짜리 단거리 코스부터 2시간 정도 걸리는 중급 코스까지 다양하게 운영된다. 퇴근 후에도 이 길을 찾는 시민 이선영(52) 씨는 “저녁 7시에 출발해 8시 반이면 집에 돌아올 수 있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고 전했다.
춘천시는 2023년 기준 12개의 공식 걷기 코스를 운영 중이다. 이 중 의암호와 공지천 둘레길이 가장 많은 이용객을 기록했다. 시 관계자는 “둘레길 이용객이 매년 10% 이상 증가하고 있어 도심 근교 접근성이 좋은 코스를 추가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춘천의 걷기 코스는 건강을 위한 운동일 뿐 아니라 삶을 돌아보고 공동체를 다시 느끼게 하는 장치다. 로컬에서의 걷기는 거창한 장비나 장거리 여행이 필요 없는 가장 현실적인 치유법이다. ‘찾고 싶은 도시’ 춘천은 이제 ‘머물고 싶은 도시’로, 길 위에서 그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다.
김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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